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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잎 떨어지는 봄 바다에는, 나고 또 죽는 시간의 가루들이 수억만 개의 물비늘로 반짝이며 명멸을 거듭했다. 사람의 생명 속을 흐르는 시간의 풍경도 저러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봄 바다 위의 그 순결한 시간의 빛들은 사람의 손가락 사이를 다 빠져나가서 사람이 그것을 움켜쥘 수 없을 듯싶었고, 그 손댈 수 없는 시간의 바다 위에 꽃잎은 막무가내로 쏟아져내렸다.
봄은 숨어 있던 운명의 모습들을 가차없이 드러내 보이고, 거기에 마음이 부대끼는 사람들은 봄비 속에서 몸이 파리하게 마른다. 봄에 몸이 마르는 슬픔이 춘수 春瘦다.
13세기 고려 선종 불교의 6세 조사 충지 冲止, 1226~1292는 지눌 知肭 문중의 대선사였다. 송광사에 오래 머무르면서 왕이 불러도 칭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충지는 초봄에 입적했다. 충지는 숨을 거둘 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탄하구나. 너희들은 잘 있으라"라고 말했다. 대지팡이 하나로 삶을 마친 이 고승도 때때로 봄날의 적막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산사의 어느 봄날에 충지는 시 한 줄을 썼다.
이것은 깨달은 자의 오도송 悟道頌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의 봄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이 그리움은 설명적 언어의 탈을 쓰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그리움의 길은 출구가 없다. 봄의 새들은 저마다 제 이름을 부르며 울고,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울음은 끝끝내 위로받지 못한다. 봄에 지는 모든 꽃들도 다 제 이름을 부르며 죽는 모양이다.
설요 薛瑤는 한국 한문학사의 첫 장에 나온다.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이다. 그 여자의 몸의 아름다움과 시 한 줄만이 후세에 전해진다. 그 시 한 줄은 봄마다 새롭다. 이 젊은 여승의 몸은 꽃 피는 봄 산의 관능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시 한 줄을 써놓고 절을 떠나 속세로 내려왔다.
이것은 대책이 없는 생의 충동이다. 그 충동은 위태롭고 무질서하다. 한문학자 손종섭은 이 시에 대해서 "아, 한 젊음을 늙히기에 저리도 힘듦이여!"라고 썼다. 이 노래의 제목은 '세상으로 돌아가는 노래"이다. 절을 떠날 때 그 여자는 스물한 살이었다. 속세로 내려와서 그 여자는 시 쓰는 사내의 첩이 되었고, 당나라를 떠돌다가 통천 通泉에서 객사했다.